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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엘] Buuvein, Buuvein.

merone 2014. 2. 2. 14:18





 밤이 깊어도 별이 아득하게 흐려지던 날이 길었다. 추위에도 아픔에도 굳게 견디도록 태어난 요정의 몸에도 찬기운이 뼛속까지 시리게 들던 잠자리가 길었다. 어릴 적에나 보았던 것 같은, 요람에 누운 형제와 본 것만 같은 얇고 투명한 침막도 볕드는 창도 없었다. 얇은 침막 대신 기울고 가문 나뭇가지들로 뒤덮인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면 한기로 가누기 힘들어진 작은 몸을 바싹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빛에 녹을 새라 볕 드는 돌길을 피해 하루를 더 걸으면 밤새 멀리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별을 헤아리는 것이 요정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일이라는데에도 그 별을 헤아리는 일조차 못할만큼 슬픔에 잠긴 표정을 헤아리는 날이 더 많았다. 





 “아가야.”


 “페레델.” 


  소스라치게 놀란 눈으로 번쩍 깨어 몸을 일으킨 엘론드는 두 손으로 침대보를 우그러지게 쥐고 있었다. 밤을 식히던 미풍도 덜자란 아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식혀주지는 못했다. 길고 큰 그림자가 빛을 등지고 발치에 앉아 자그맣게 떨고있는 발목을 느리게 잡았다. 길갈라드는 자상하게 웃는다. 마에드로스도 마글로르도 아이가 자라면서 오랫동안 보아온 그들 주변의 어떤 요정도 저렇게 근심으로부터 벗어난 표정으로 다정하게 웃어주지는 않았다. 그것이 익숙치않아 아이는 되레 놀라 나지막하게 미소 짓는 대왕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길갈라드는 그런 아이의 머리 위에 크고 단단한 손을 얹는다. 수차례의 기회에도 결국은 아이들을 되찾아 오지 못한 손으로 그는 아이의 검고 가느다란 머리칼을 느리게 헝클었다. 푹 수그린 고개를 느리게 들어올리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대왕은 조심스레 팔을 벌려 아이의 가느다란 몸을 안는다. 품에 안아도 한참이나 품이 남을 만큼 아이는 말랐고 그만큼 조심스러워졌다. 

 익숙치 않은 애정에 아이는 조심스럽게 등을 말고 몸을 굳힌다. 길갈라드가 아이를 안은 품에서 조금이라도 몸을 떨어트리려고 하는 듯이. 한참이나 그렇게 놓아주지 않고나서야 아이는 떨리는 손끝으로 그의 옷깃을 쥐었다. 작은 손에서 나오는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제아무리 요정의 천이라고 한들 잔뜩 구김이 간 옷을 내일 아침 제대로 입을 수는 없을 터였다. 오래, 별이 조금은 움직였을 무렵에야 아이는 긴장을 풀고 너른 어깨에 악몽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기댔다. 여전히 가쁜 숨소리가 색색거렸고 아이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아이는 여전히 다시 잠에 들지는 못한 것 같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몰라도 길갈라드는 엘론드가 꾸는 악몽이라면 작은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수많은 두려움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들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어림짐작한다. 아이를 안은 팔이 무거워 조금이라도 자세를 바꿀라치면 매섭게 옷깃을 꽉 붙드는 손길이 옷자락 너머로 느껴진 탓도 있었다. 

 길갈라드의 목소리는 낮고, 다정하다. 마글로르의 노래를 듣고 자란 아이에게는 그다지 특별 할 것 없는 노랫소리였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느리게 아이의 등을 도닥이면서 작게 귀에 속삭인다. 두려움 없는 놀도르의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 상냥했고, 힘있고 낮은 그의 목소리로 부르기엔 지나치게 단조로웠으나 아이는 이해한 듯싶었다. 엘론드는 그의 목소리에서 흐림없이 뻗어나오는 상냥함을, 걱정과 애정을 읽는다. 대왕의 노랫소리는 노래보다는 속삭임에 가깝고, 속삭임보다는 오래된 주문을 외는 것처럼 단조롭다. 잘게 떨리던 아이의 등이 잔잔히 가라앉는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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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자장가. Buevein d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