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Tolkien

길엘 단문

merone 2014. 2. 25. 03:03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희다. 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나이인데도 너는 여전히 아이처럼 보였다. 고사리처럼 작던 손에서는 손가락들이 얇고 아름다운 봄날의 가지처럼 자랐고, 희고 긴 팔다리는 조금씩 안부터 단단해졌다. 입에 포도알을 물려주면 겨우 한 입에 머금던 입술도, 곧지만 야트막한 산등성이 같던 콧대도 자랐다. 색이 짙어지고 입술이 벌어지면 아이 특유의 크고 귀엽던 이빨들도 가지런한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우묵하게 자란 뼈대 안의 눈동자 위로는 짙고 아름다운 그늘이 졌다. 그런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니. 손을 뻗어 책을 건네받을 때 마다 매끄러운 팔 아래로 느리게 걷혀 내려가는 소맷자락. 콩콩 발을 구르고 너른 들 위를 뛰어다니던 두 다리는 이제 제법 청년의 것처럼 움직인다. 뛰지도 발을 구르지도 않는 발걸음 아래에서 움직임에 파도처럼 일렁여오는 대기가 얼굴을 부드럽게 감쌀 때마다 갈비뼈 안쪽에서 느리게 물밀 듯 밀려오는 따듯한 봄바람을! 엘론드. 그렇게 부르면 돌아보는 너는, 오른 어깨를 뒤로 밀어내며 얼굴을 돌린다. 너의 가느다란 목이 돌아보는 얼굴을 따라 움직이고, 속눈썹을 매끄럽게 들어올리고나면 짙게 변한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소리 없이 초조한 것 없이 움직인다. 그런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너와 너의 그림자와 너의 미래 사이에서 느린 바람에 이는 갈대처럼 휘청인다. 너의 얼굴에서 여전히 어린 너를 보고, 청년처럼 빛나듯 아름다운 너와, 무르익어 성년이 된 너를 본다. 너의 얼굴은 오래 전에 알고 있던 그 친우의 것처럼 새벽별처럼 아름다웠던 피를 빌어 지금보다 아름답게, 요정이 가장 사랑하는 과실처럼 농익어 갈테다. 새로 난 여린 가지처럼 길게 자란 손가락은 뼈마디가 자라고, 그 손끝에 검과 책으로 상처입은 굳은살이 둥지를 틀 듯 자리를 잡겠지. 너의 다리는 내가 곧 등 뒤에 서서 팔을 벌려주지 않아도 될만큼 곧게 땅을 딛고 서는 법을 알게 될 터였다. 요정의 예지력이 아니라 너의 얼굴이, 너의 젊은 얼굴에 켜켜이 쌓인 너의 핏줄과 너의 어린 시절이 보여주는 그림자이다. 빛이 변하면 사물의 색이 변하듯이. 네가 살아가는 시간과 함께 내가 알고 있던 작은 몸도 탈 없이 변해간다. 나의 성채에서. 빛이 드는 상아색의 회랑을 따라 걸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