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딕/숲딕 (숲과 사귀는 딕과 딕을 짝사랑 하는 팀) + 포지션 없는 뎀팀뎀(?)
입학식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한 딕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연말에는 경찰도 바빠지는 법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던 브루스는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날이 얼어붙기 시작하는데도 도시는 닥쳐오는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기라도 하듯 점점 더 소란스러워져 갔다. 파티도 많고 취객도 많은 때였다. 데이트 강간에는 어떤 약이 좋다느니 하는 시니어들의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들을 빼내 돌린 것도 티모시였기 때문에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래도.”
브루스가 말을 덧붙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소식이 뜸하기는 하구나.”
팀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창밖으로 설탕 가루 같은 흰 눈이 쌓이고 있었다. 고담의 겨울치고는 늦은 첫 눈이었다.
팀은 검게 코팅된 창밖으로 말없이 시선만 두던 브루스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적어도 브루스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브루스의 말이 단순히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한 번쯤은 딕에게 들러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는지 분간해내는 재주가 아직 팀에게는 없었다. 딕이라면 브루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을 텐데.
코트 위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털어내자 눈송이에 닿은 장갑 끝이 진한 색으로 물들었다. 일이 끝났을 시간인데 음주 단속에라도 불려나갔는지 야간 순찰에 나갔는지 그가 돌아오는 기척도, 집 안에서 나는 소리도 없었다. 눈이 올 줄 알았으면 목도리라도 두르고 나오는 건데. 물기로 물든 장갑 끝부터 손끝이 묵직하고 얼얼하게 얼어왔다. 오른팔을 깊이 구부려 장미꽃다발을 품에 안으면서 내어 쉰 입김이 한 겨울처럼 하얗다.
“팀?”
아마 그가 불러 세우지 않았다면 그즈음에서 포기해버렸을지도 몰랐다. 첫 눈이 오는 날은 그 풍경에 걸맞게 기온도 조금은 따듯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첫 눈이 늦어진 만큼 바람도 추위도 예년의 배로 혹독했다. 사복 차림의 딕은 놀란 표정으로 한참동안 팀을 바라보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웠다.
“일단 들어와.”
딕이 문을 안으로 밀어 열자 미적지근한 실내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얼마나 밖에 있었던 거야?” “전화하지 그랬어.” 딕은 팀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그는 늘 대답 없는 동생들에게 익숙했다. 그 ‘동생’들 중에서 그나마 그의 목소리에 가장 많이 대답한 것이 티모시였을 만큼. 그만큼 딕은 없는 대답에 익숙했고, 대답이 없어도 늘 상냥했다.
대답이 없는 동안 딕은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주전자 물을 올렸다.
“팀, 커피?”
“응.”
“티미가 여기까지는, 별일 이네.”
딕은 말을 마치고 나서 얕게 목을 울려 웃었다.
“브루스는?”
“별 일 없어. 잘 지내.”
“고담에 가봐야 하는 거야?”
당장은 곤란한데. 딕은 여전히 엷게 웃는 얼굴로 머그잔에 물을 따랐다.
“팀?”
“티미. 무슨 생각해?”
“형.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네. 피곤할 텐데.”
머그컵 안의 커피 알들을 티스푼으로 젓던 손이 멈췄다. 딕이 알기 쉬운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닐 것이다. 카울을 쓰지 않은 딕의 표정은 늘 정직했다. 늘 웃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읽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그리고 표정만큼 몸짓도 그랬다. 딕은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고는 팀의 눈앞에 머그잔을 내밀었다. 손끝부터 젖어들어 쉽게 벗겨지지 않는 장갑을 힘겹게 벗어내고 머그컵을 받아들자 손끝이 벌겋게 물들었다. 딕의 눈이 손끝을 스쳐갔다.
“유니폼도 아니고. 무슨 일 있어?”
딕이 소파에 몸을 던져 앉자 낡은 소파가 팀의 엉덩이 밑까지 부드럽게 꺼졌다가 천천히 모양을 되찾았다. 딕은 팀에게, 데미안에게 늘 하듯 그리고 아마 제이슨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길고 날렵한 팔을 양껏 뻗어서 팀의 허리를 완전히 안고 어깨에 뺨을 기댔다. 딕의 몸짓에는 늘 손위 형제라고 하면 어디에 가서든 살가운 성격인 모양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게 팀.”
“말 해봐. 어차피 브루스한테 말 못하니까 그러고 있는 걸 거 아냐.”
같은 파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밝게 빛나던 눈을 딕은 아주 느리게 깜박이고 장난스레 웃었다.
“클락이랑 싸웠어.”
“클락 켄트?”
“그래. 우리 보이스카웃 씨 말이지.”
“리그에서 따로 볼 일도 없으면서 무슨.”
대체로 딕의 표정은 솔직한 편이었다. 팀을 끌어안은, 상체를 낮춘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팀과 눈을 맞추는 딕의 표정은 어딘가 곤란해보였다. 팀이 딕의 표정을 읽느라 당혹해하는 사이 딕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떼어내며 숨소리 같은 웃음소리를 내어 웃었다.
“...저기 팀, 그러니까.”
팀은 여전히 시린 손으로 식기 시작하는 머그컵을 고쳐 쥐었다.
“브루스한테는 아직 말 안했지만 아마 알고 있을 것도 같고. 브루스는 브루스니까.”
딕은 답지 않게 천천히 말을 이으며 뜸을 들이다 손을 뻗어 팀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팀도 알게 되겠지만, 클락이랑 사귀고 있어. 두 달 전부터.”
“그냥, 좀 말다툼을 해서 그래. 별 일 아니야.”
“팀?”
팀, 아픈 거 아니야? 밖에 너무 오래있어서 감기기운이라든가. 티미. 딕은 손에 쥐고 있던 머그컵을 커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팀의 둥근 어깨를 손으로 감싸듯이 쥐어왔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앞머리를 쓸어넘기면서 한참동안이나 이마를 짚은 채로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는 딕의 가슴을 밀쳐 떨어트리고 나서야 팀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열 나는데?”
“추운 데 있다가 들어오면 누구라도 그래.”
“정말 괜찮아?”
“괜찮아.”
“아, 그리고 브루스한테는 말 하지 마.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있어.”
“브루스라면 클락한테 당장에 날아 갈거야. 안 그래 보여도 은근 다정한 구석이 있으니까.”
“...알아.”
“정말?”
“그래.”
딕은 소리 없이 웃다가 다시 팀의 허리를 끌어안고 소파에 완전히 몸을 묻었다.
“그러고보니 학교는 어때?”
“그냥...”
“고등학교 때랑은 많이 다르지?”
딕은 팀의 대답을 완전히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팀은 간단하게 고개만 끄덕였고 딕은 그런 팀의 머리를 쓰다듬다 고개를 빼고 소파 옆을 눈짓 했다.
“어느 여자야? 우리 티미한테 장미꽃을 얻어낸 게. 어디 들리던 참이었어?”
“형.”
“아,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응?”
딕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브루스가 셀리나에게 배트맨의 정체를 밝혔노라고 했을 때처럼 아주 시원하고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티미가 벌써 여자한테 장미꽃을 주는 나이가 됐어.”
“아니야, 형.”
“브루스한테 주려고 산 건 아니잖아?”
딕은 더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웃었다. 얼굴 전체가 짓궂게 변하는 표정으로 이를 드러냈다가 팀의 허벅지 위에 가슴이 닿도록 팀을 가로질러 소파 밑에 내려놓았던 장미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한 서른 송이쯤 되는 것 같은데?”
딕은 그대로 팀의 허벅지를 베며 몸을 반 바퀴 돌려 돌아누웠다.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손에 들린 한아름의 꽃다발이 팀의 턱을 간지럽혔다.
“그 정도였던 것 같아.”
“서른 살 여자한테 반한거야? 브루스가 가만히 있지는 않겠는데.”
“딕, 아니야.”
딕이 깔깔거리고 웃을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팀을 올려다보느라 허리를 소파에서 띄우면 견갑골에 힘이 들어가면서 팔꿈치가 천천히 몸의 무게를 싣고 허벅지를 눌러왔다. 손에 들린 머그컵을 떨어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팀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야했다.
“팀.”
“내가 꽃다발 만져서 기분 나빠졌어?”
“...아니야.”
“누구 주려고 산 걸 텐데.”
“형 가져.”
딕은 굳어있는 팀을 올려다보다 팀을 달래듯 손바닥으로 팀의 무릎을 느리게 도담였다. 독한 연고를 바른 것처럼 무릎안쪽부터 뼈가 더워진다.
“혹시 약속 취소 됐어? 그래서 그래?”
팀의 허벅지를 손으로 딛고 딕은 몸을 일으켰다. 딕의 가슴과 팀의 배 사이에 놓인 꽃다발의 포장지가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팀. 티미 형 좀 봐. 티임. 딕의 손가락이 잔머리칼이 난 앞머리께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귓가로 내려갔다가는 이마 위를 덮은 머리칼들을 귀 뒤로 조심스럽게 넘겼다.
“기분 상했어?”
“그런 거 아니야.”
“팀.”
“안 상했어. 형 집이 늘 이 모양이길래 사온거야.”
그거라도 있으면 덜 형편없어 보일 것 같아서. 딕은 팀의 말에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다 혀를 내두르고 웃었다. 전보다는 진전이 있기는 했으나 완전히 시트가 뒤집힌 침대며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나간 트레이닝 복, 발치에 떨어진 카울까지 팀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이해가 될 만한 수준이었다.
“정말로?”
“....그래. 여자 같은 것도 없어. 아직 입학한지 세 달 밖에 안 지났어.”
“...세 달이면 충분하지 않아?”
“형한테나 그렇겠지.”
“정말 고담에 안 가봐도 되는 거야? 그래서 온 거 아니지?”
“그랬으면 리그에서 호출했겠지.”
딕은 파란 눈으로 한참동안 꽃다발을 바라보다 다발을 머그컵 옆에 내려놓았다. 팀을 향해 몸을 틀고 회색 코트 위로 얼굴을 묻었다가는 팀과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보이는 한 쪽 눈으로만 얄상하게 웃는다.
“너 보니까 집에 가고 싶다.”
피곤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는 딕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 가족을 떠올리는 딕에게, 사소한 말다툼에 진지하게 힘들어할 만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연애의 형태를 띤 것을 하고 있는 그에게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고작 두 달이지만 그만큼 늦된 것은 팀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하면, 입학하고 자리를 잡으면, 자기 자신에게 조금씩 시간의 유예를 허락한 것은 팀이었다. 팀과 데미안을, 그리고 이따금 나타나는 제이슨까지 딕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동생들로서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쉽게 어떤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한겨울이 되고 나서야, 브루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불현 듯 이제는 찾아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너무 늦었다.
“데미안이 보고 싶어 해. 말은 안 들어도 형 이야기만 나오면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면 바로 피할 거면서.”
딕은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태어나서 자란 과정만큼이나 보통이 아닌 동생이었지만 딕의 말에는 툴툴거리면서도 결국은 어린아이가 되고 마는 데미안을 브루스도 알피도 알았다. 좋아하고 있다는 말 대신 데미안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꺼내는 쪽이 훨씬 쉬웠다. 입술이, 그리고 입 주변의 근육이 멈추지도 얼어붙지도 않았다. 망설일 필요가 없는 대화들은 으레 그렇게 훨씬 더 간단하고 쉬운 법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것이 된 줄로만 아는 꽃다발을 돌아보던 딕은 꽃 한 송이를 빼어 들어서 줄기 중간을 꺾고 팀의 코트 윗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피나.”
“응?”
“거기 가시에 찔렸다고.”
팀은 아직 남은 줄기를 쥐고 있는 딕의 손목을 쥐었다. 찬 손이 손목에 닿자 어깨가 움츠러든다. 너무 많은 통각에 익숙해져서인지 무디게 팀의 얼굴만 바라보는 딕의 손가락에 입술을 가져갔다. 한 방울이 사라지면 겨우 한 방울 베어 나오는 상처를 혀로 가만히 핥는 사이 눈이 마주쳤다.
“...저기 팀.”
팀은 고개를 들지 않고 눈커풀을 위로 들어올려 반이 가려진 눈동자로 딕을 바라본다.
“간지러운데.”
“찔린 건 모르면서 간지럽기는 해?”
그은 팀의 입술에 물려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비틀어 빼냈다. 타액과 섞여 얼룩져 번진 손가락으로 핏방울이 번진 팀의 입술을 문질러 닦고 손가락에 남은 얼룩을 닦아 내듯이 엄지를 입술 사이에 물었다.
“형.”
응? 입안에서 공기가 먹힌 소리가 막힌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어디가서 그러지 마.”
‘그런’ 게 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표정으로 팀을 보며 말없이 눈만 깜박이던 딕은 곧 눈을 접었다. 응. 팀 말 들어야지.
“...정말로 그러지 말라니까. 지금도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는 알아?”
“하하....하...”
말 없이 웃기만 하는 딕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가까이에서 전화 벨이 울렸다. 코트의 주머니 위를 더듬었지만 팀의 것은 아니었다. 딕은 팀의 얼굴과, 팀의 빈 두 손과 코트를 번갈아 보고는 놀란 듯 상체를 일으켰다. 스프링이 고장 난 소파에 완전히 파묻혀있던 날렵하고 단단한 몸이 아크로바틱하게 튀어 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형.”
“잠깐만.”
“받지 마.”
“응?”
“잠깐만 팀.”
클락?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다니까요? 딕이 얕게 울대를 울려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소파를 등지고 주방의 벽면에 비스듬히 어깨를 기대고 한 마디 내뱉을 때 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것이 부끄럽기라도한지 딕은 벽에 머리를 콩콩 찧었다. 희고 균형 잡힌 발이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형.”
딕은 눈앞에 눈을 떼기 힘든 사람이라도 서 있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전화 지금 받아야 돼?”
아니에요. 휴대폰 너머의 상대가 무어라고 이쪽을 걱정하는 말을 했겠지. 보이 스카웃이 다정한 사람이라는 건 모두가 알았다. 아마 그렇게나 리처드를 감싸고 도는 브루스도 클락 켄트라면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을지도 몰랐다.
괜찮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는 딕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팀은 테이블 위에 놓인 꽃다발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좀 더 늦을 걸. 코트 윗 주머니에 꽂혀있던 꽃을 빼내 딕이 내려둔 머그컵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밑동이 짧았는지 꽃받침이 채 머그잔 위에 고스란히 걸리지 못하고 못 다 마신 커피 속으로 빠지는 꽃을 바라보다 팀을 옷깃을 여몄다. 물기에 젖은 손가락들이 장갑 채로 얼어붙던 바깥 날씨보다도 소파를 등진 등을 바라보는 것이 몸에 한기가 들었다.
“갈게.”
딕은 팀을 바라보며 눈썹만 치켜 올렸다.
“집이 춥네. 히터 좀 틀어.”
딕의 맨발이 푹신한 러그 바닥을 디딜 때 마다 발끝에서 나는 사뿐한 바람소리와 무용수처럼 핏줄이 불거져 모양이 잡힌 발을 좋아했다. 딕은 소리 없이 현관 문 앞까지 나와 걸쇠를 풀어주다 밖에서 불어오는 한기에 짧은 반팔 티셔츠 아래의 팔을 손으로 감쌌다.
“주말에 집으로 갈게. 미안해.”
“신경 쓰지 말고. 그 전화나 잘 받아.”
디키? 휴대폰 너머로 듣기 좋은 클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브루스만큼이나 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였다. 잠시만요, 클락.
“형.”
“응.”
“브루스한테 말 안 할테니까 걱정 마.”
거기 팀이니?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를 아랑곳 않고 팀은 곧게 딕의 파란 눈을 응시했다. 고마워.
“그리고 다음부터는 연애가 바빠도 집에는 들러.”
“.....응.”
“갈게.”
딕의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자 그는 놀란 듯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트렸다.
“그리고 다음부터 슈퍼맨 전화는 나 없는 곳에서 받아.”
갈게. 히터 좀 올려 딕. 딕은 맨 발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밟으며 문 밖까지 따라 나섰다. 얇은 흰색 반팔 셔츠 아래로 소름이 돋은 팔을 손바닥으로 겨우 부비면서 추위에도 애써 웃는 딕을 바라보다 팀은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요 클락. 등 뒤에서 그의 통화가 이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딕의 목소리는 늘 다정했는데에도 그만큼 녹아내릴 것 같은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깨 위에 내려앉던 설탕가루 같은 눈송이처럼. 딕의 목소리도 내려앉았다가는 짙은 물자욱을 내고 사라졌다.
“야 드레이크. 왜 이제 들어와?”
데미안은 울새처럼 차려입고 웨인 저의 저택 입구에 크게 세워진 석상 위에 앉아있었다.
“패트롤 갈 시간치곤 너무 이르지 않아?”
“네가 무슨 상관이야.”
“됐다.”
데미안을 향해서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다가 문득 코트의 앞주머니를 쓸었을 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클락 켄트의 전화를 받는 딕의 목소리를 들으며 괜한 화풀이를 하지 말 걸 그랬다. 가시 어디쯤에 그의 피도 묻어 있었을텐데. 딕이 꺾어준 꽃이었는데.
“바아보. 얼굴 옆에 붙은 거 얼어서 떨어져도 히어로는 할 수 있냐?”
데미안은 두 팔을 팔짱 끼고 팀을 바라보다 코웃음쳤다. 카울 뒤에서도 영악한 웃음기로 일그러진 얼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데미안의 목소리에 빨갛게 얼어붙어서 감각이 없어진 귀를 손으로 감싸는 사이 눈앞이 컴컴해졌다.
“야!”
“누가 그러게 바보 같이 굴래?”
간지럽게 눈커풀을 뒤덮은 검은 천을 걷어내어 들여다보면 아마 목도리 비슷한 것이었던 것 같다. 누가 브루스 친아들이 아니랄까봐 눈 깜박하는 사이에 사라졌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걸어 들어가며 아이의 체온으로 덥혀진 목도리를 목에 두르는 동안 웨인저에서 정문까지 조그맣게 찍힌 아이의 발자국이 보여, 팀은 마치 딕에게서 전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엷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발자국 크기만큼은 애 같았다.
“성격까지 브루스 같아 가지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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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 되게 오랜만인듯 8ㅁ8...팀은 청초하고 조용하면서 이성적인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ㅠㅠ크고 나면 좋아하는 느낌의 이지적인 스타일의 회색 코트가 잘 어울리는 (지금도 잘어울리지만) 남자가 되지 않을까. 버버리 서류가방을 들려주고싶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딕은 로빈일 때도 나위일 때도 경찰일 때도 다 좋은..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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