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주워 주는 갱상도 남자 데미. 뎀딕. (데미의 역키잡물이었는데 그냥 데미귀염사물.)
“데미안?”
문이 열리자마자 딕은 데미안에게로 달려들었다. 곧장 달려드는 그의 가슴팍을 밀쳐보려고 애를 써도 어린애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브루스처럼 되기 위한 교육을 잘 받았어도 성인의 힘에는 비할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탈리아의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불평할 새도 없이 데미안은 그에게 빽 소릴 내질렀다. 이거 놔 그레이슨! 등 뒤로 숨겨둔 꽃다발은 이미 그의 단단한 팔에 눌려 완전히 찌그러져있었고 딕이 한참을 맞대고 있던 뺨도 어린애처럼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데미!”
딕은 잔뜩 볼이 부푼 데미안을 보는 체 마는 체 데미안의 팔목을 잡아 집 안으로 끌다가 데미안의 손에 들린 꽃다발과 자신의 발치에 이리저리 흩어진 꽃잎을 보고는 데미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잔뜩 구겨진 꽃다발의 포장지도 책갈피처럼 납작해진 노랗고빨간 꽃들도 데미안의 성에 차지 않았다.
“...”
“데미?”
“너 주려고, 너 주려고 오다 주워왔단 말야.”
색깔의 조합이 지나치게 알록달록하고 촌스러운 걸 빼면 분명히 꽃집에서 사온 것처럼 밖에는 보이지 않는 꽃다발인데. 딕은 소파에 파묻힐 기세로 몸을 한껏 묻은 채로 심통이 난 데미안을 바라보다 냉기가 스며드는 카펫 위에 무릎을 꿇었다. 너 때문에 다 구겨졌잖아.
“데미.”
딕은 데미안,하고 다시 한번 데미안을 부르고 눈을 맞췄다. 난 데미가 가져오는거면 정말 주워온 더러운 코카콜라 병이어도 좋아. 진짜 주워온거라니까! 알아. 그리고 코카콜라 병 같은 구린 건 아무도 안 주워!
딕의 아파트에서는 딕의 냄새가 난다. 브루스에게서 나는 냄새와도 웨인저에서 나는 냄새와도 다르다. 비가 오는 날이면 타는 장작의 냄새와 알피가 잘 닦아낸 마르고 윤이 나는 나무 바닥의 냄새, 따듯한 수프와 양초의 냄새와는 다르다.
난로에서 타는 장작의 냄새 대신 싸구려 기름의 냄새가 라디에이터에서 흘러나오고, 질이 좋지 않은 카펫에서는 잘 말리지 않은 빗물의 냄새와 언젠가 엎지른 커피의 냄새가 난다. 닫힌 창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냉기가 실린 약한 바람덕분에 집안 구석구석에서는 옅은 체취가 풍겼다. 약간의 땀 냄새와 비누의 냄새. 커피의 냄새와 약간의 가스냄새. 한데 뭉쳐두면 기분 좋은 집의 냄새가 된다. 그레이슨의 집은 그레이슨 같았다. 어디 하나 제대로 정돈 된 곳은 없어도 카펫 위에 떨어진 그레이슨의 흰 셔츠를 발로 차고 있다 보면 그레이슨이 등 뒤에서 안아주는 것처럼 몸이 따듯해진다.
데미안은 비 냄새를 맞는 강아지처럼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집 안에서 커피냄새 대신 옅은 기름냄새에 섞여 달착지근한 냄새가 났다. 그레이슨의 아파트에 어울리는 냄새는 아니지만 추위에 얼어있던 데미안의 기분이 노곤노곤 풀릴 만큼은 만족스러웠다. 주전자를 불 위에서 내려놓던 딕이 뒤를 돌아 데미안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 없이 고개를 돌린다. 딕의 집 안은 이제 반 이상 꽃에 파묻힌 꼴이 되었다. 완전히 파묻히진 않았지만 적어도 데미안이 이틀에 한번 꼴로 가져오는 꽃다발 덕분에 반 이상은 그랬다. 주워왔다고 하기에는 어설플 만큼 지나치게 싱싱한 꽃들은 적어도 완전히 마르는데 이주는 걸렸고 딕은 데미안이 ‘사 온’ 꽃다발들을 차마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데미안은 패트롤을 빙자해 딕이 집을 비운사이 테라스 난간에 골똘히 앉아 자신이 사다놓은 꽃다발이 없어지진 않았는지, 치워진 것은 없는지 곧잘 확인하고는 했으니 딕의 선택은 꽤 현명했던 셈이었다.
딕은 따듯한 핫초코를 타서 데미안의 손에 꼭 쥐어주고 나서야 어설프게 웃었다. 오늘은 꼭 더는 주워오지 말라고 해야지. 아무리 가사에 소질이 없는 딕이어도 더 이상 집안에 꽃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다는 것 정도는 눈에 띄게 분명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데미안에게 더 이상 꽃다발은 가져오지 말자고 말해야지 결심했던 것도 이미 일주일 전의 일이었지만 불퉁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내미는 데미안의 얼굴을 볼 때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이젠 분명히 말해야했다. 조금만 더 꽃다발이 쌓였다가는 꽃다발이 마르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집안이 정글이 되어 포이즌 아이비의 온실처럼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딕이 직접 마른 꽃들을 내다 팔아야 하거나.
“....해피 버스데이 그레이슨.”
데미안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꽃다발을 들어서 이제는 빈손이 된 딕에게 건넸다. 추위로 얼어붙은 입이 축하를 전하는데도 약하게 떨렸다. 데미안은 두 손으로 완전히 머그컵을 감싸쥐고 핫초코의 냄새를 맡는다.
“데미. 오늘도 주워온 꽃다발이야?”
“...오늘은 산거야.”
데미안이 아주 작게 툭 내던진 말에 딕은 팔에 힘을 주어 안고 있던 꽃다발을 심장께 가까이에 가져갔다. 무리다. 데미안에게 꽃다발을 가지고 오지 말란 말을 딕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좀 더 진작에 알아차리고 꽃병이나 잔뜩 사둘걸. 경찰서 동료가 이사하면서 필요없는 물건은 주겠다고 할 때에 꽃병으로 쓸만한거나 좀 달라고 할 걸 그랬어야 했다. 딕은 이제 소파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머그컵 안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데미안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나는 못해. 브루스는 몰라도 나는 안 돼.
“얼른 안마시면 다 식을 걸?”
딕은 카펫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무릎을 양 팔로 모아 안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데미안을 바라본다.
“데미안.”
브루스를 닮은 눈이 불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다가 딕은 입술을 한껏 끌어올려서 웃었다.
“고마워. 올해는 데미안이 제일 먼저 축하해줬네. 브루스보다도 빨랐어.”
“정말?”
저럴 때는 영락없는 어린애인데. 브루스보다도 빨랐다는 소리에 데미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올리고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여주자 작은 입술이 만족감에 젖어서 고양이 입처럼 변하는 것을 보면서 딕은 데미안의 머리를 헝클었다. 애라니까.
“애 아니라고!!!”
“그래그래, 커피도 못 마시면서.”
“마실 수 있어!!”
“손에 들린 건 뭔데?”
“이건 네가 준 거잖아!”
“알피한테 물어본다?”
데미안이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처럼 만족스럽게 웃더니 벌써부터 입이 나와서 눈썹이 진한 미간을 모을 대로 잔뜩 모아놓고 인상을 구기는 얼굴이 브루스를 닮아서 딕은 평소보다 더 소리내어 웃었다. 데미안은 손에 들려준 핫초코를 테이블에 내려놓기 무섭게 소파에서 뛰어내려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딕의 팔에 달려들었다.
“알피한테 지금 물어볼건데, 안 돼?”
대답 없이 팔에 매달려있던 데미안은 두 다리를 쭉 뻗어서 딕의 허리를 안았다. 숨쉬기가 힘들어 지는 걸 보니 대답은 이미 들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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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의 역키잡이 보고싶은데 더 이어서 못쓰겠더...버벅..버벅..
데미안 꽃집 븨아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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