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엘, 페레델, 페레델






에레이니온 길갈라드가 자신의 조카뻘이 되는 작은 반요정을 거두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그러하기로 되어있었던 것처럼 길갈라드는 검은 머리의 반요정을 본 순간 턱없이 어린 요정에게 사랑에 빠졌다. 마치 엘론드의 오랜 조상 중 하나가 난 엘모스 숲 속에서 멜리안을 마주쳤을 때처럼 그러했다. 반요정의 검은 머리칼은 별 빛이 뜨는 밤처럼 검었고, 다른 모든 요정들이 그렇듯 길갈라드에게도 별이 뜨는 밤은 가장 사랑하는 밤이었다. 길갈라드의 감정은 처음부터 격렬하거나 숨이 막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으로 불러야 할 페아노리안 형제의 손에 길러진 어린 요정에 대한 애틋함이었을 것이다. 마이드로스와 마글로르 형제가 가엽이 여겨 기른 반요정의 머리에는 놀도르 최고의 장인의 피를 이은 형제의 손으로 빗어낸 티아라가 씌워져 있었고, 길갈라드를 만난 뒤 초창기 엘론드의 눈은 말없이 형제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곧잘 불안하게 바다를 향하고는 했다.


 길갈라드는 젊은 요정왕이었지만, 그가 거둔 반요정은 그보다도 더 젊었다. 엘론드는 요정들 중에서도 아주 젊은 나이였음에도 어리다고 표현하기에는 그가 살갗으로 헤어온 슬픔들의 깊이가 얕게만 느껴져 어울리지 않았다. 길갈라드는 그를 어리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작다고 밀했고, 그보다는 더 자주 페레델이라고 불렀다.

 길갈라드는 아마도 처음 엘론드를 보았을 때부터 엘론드의 눈 속에, 그의 피 속에 흐르는 그 모든 자손들의 역사가 슬픔처럼 쌓여있음을 직감했다. 바다를 향한 눈동자가 가끔은 페아노리안 형제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가도 그 다음순간에는 물가를 그리워하는 신다르의 갈증처럼 느껴졌다. 만일 길갈라드가 마주친 슬픔들이 엘론드의 피에 흐른 것이 아니었더라면, 길갈라드가 하루에도 수 십 번을 마주하는 눈동자에 켜켜이 쌓인 슬픔은 작은 요정이 살갗으로 헤아리기 힘들 만큼의 시절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엘론드.”


 엘론드의 목소리는 쉽게 들뜨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엘론드가 가장 사랑하고 믿어 마지않는 젊은 상급왕의 부름을 들었을 때조차도 그랬다.


 “길갈라드님.”


 웃음 짓는 순간에도 나지막히 울리는 목소리는 서두르는 법을 배우지 않고 사는 첫째 자손의 그것처럼 보였다가도, 길갈라드의 눈에만큼은 엘론드가 어찌 할 수 없이 겪었던 그 간의 모든 것들에 길들여진 탓처럼 여겨졌다. 때로 슬픔은 온 몸에 스며드는 무기력함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갈라드는 엘론드가 지금껏 몸을 의지했던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하고 아늑한 성채에서, 어린 갈라실리온의 묘목을 키우듯이 진중하고 다정하게 아주 오랫동안 반요정에게 애정을 쏟았다. 엘론드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을 만큼 길갈라드를 따랐던 이유는 길갈라드가 엘론드를 바라볼 때마다 그 누구보다도 그를 애틋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해서 먼 바다를 향하던 시선은 차츰 줄어들었고, 길갈라드가 “나의 페레델”이라고 부르면 엘론드는 아직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가지 않은 길갈라드의 이름을 내뱉는 준비를 하듯 아주 작게 입술을 열고 길갈라드를 돌아봤다.



 엘론드가 그렇게까지 변하는데는 길갈라드가 처음 엘론드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애틋한 감정이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 충분한 시간이 들었다. 길갈라드는 그가 가졌던 애틋함이 달라졌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엘론드가 머리칼조차 흔들리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리고 나긋하게 몸을 움직여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손을 뻗고 싶었다. 무방비한 표정으로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술을 여는 엘론드의 뺨은 사랑스러웠고, 문득 엘로스를 떠올리며 누메노르를 향하는 눈길을 자신의 성채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길갈라드님.”


 흐린 눈으로 초점 없이 엘론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날이면 간혹 엘론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웃으면서 돌아보고는 했다. 은실로 수 놓은 남색 소매에 싸인 손을 뻗어 길갈라드의 손등을 덮으며 불러오는 상냥함은 엘론드의 천성과 길갈라드의 다정함이 일궈낸 결과처럼 보였고,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표정은 길갈라드가 북쪽의 오르크 떼를 걱정하고 있기라도 하는 양 진지했다. 그렇게 희고 깨끗한 손으로 덮인 손등을 바라보면서 대답을 망설이고 있으면 엘론드는 그제서야 이름을 불렀다. 에레이니온. 무슨 생각 하세요.


 “북쪽을 생각한건 아니란다. 엘론드.”

 “요즘 그런 표정을 자주 짓고 계세요.”


 품에 안길 듯 말듯 모호한 거리를 두고 곁에 앉아 비스듬히 길갈라드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이 엘론드가 그 오랜 시간 동안 겨우, 아주 어렵게 배운 애정의 한 가지 표현법이었다.

 오르크를 토벌하기 위한 토벌대에, 길갈라드와 함께 출정을 허락받은 뒤로 엘론드는 길갈라드의 오른편을 허락받았고 화살과 칼이 쏟아지는 전장 가운데에서 길갈라드가 있는 편으로 엘론드는 비스듬히 말과 함께 몸을 기울였다. 그것은 점차 오랜 시간을 드리워 눈치 채기 어렵지만 분명히 남은 습관이 되었고, 말에서 내린 뒤에도 이따금은 엘론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 습관을 아는 사람도 습관의 대상이 되는 길갈라드 뿐이었으나, 길갈라드는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길갈라드는 자신에게로 기울어오는 엘론드의 몸을 그대로 밀어낼 생각도, 그대로 품에 감히 끌어들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어린 그의 페레델은 별 빛이 이는 밤처럼 아름다웠다. 영글어가는 갈라실리온의 묘목처럼 근심과 그리움에 쌓여있던 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별의 지붕이라는 이름처럼 그의 얼굴에는 점점이 별빛이 어린 것 같이 느껴졌다. 중간계의 가장 고귀한 상급왕도 감히 애틋한 애정 외의 것으로는 손 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엘론드.”


 길갈라드는 손을 뻗는 대신에 페레델의 이름을 불렀고 소리 없이 대답을 하는 눈과 마주치고 나면 늘, “아니, 아무 일도 아니다.” 하고 답했다.



 에레이니온은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누군가의 완전한 아버지인 적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애틋함만을 품는 법을 몰랐다. 는 엘론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그도 모르는 새 그 이상의 것이 되어있음을 인정해야했다.

 길갈라드는 투린 투람바르와 니니엘의 사랑이 왜 저주의 일부였는가를 모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페레델은 사랑스러웠다. 엘론드의 눈길이 밖을 향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 수록 길갈라드는 그것에 희열을 느꼈고 소리 없이 기뻐했다.




감히 함부로 뻗지 못한 고귀한 왕의 손길은 이따금 별 빛이 어두워 엘론드가 나쁜 꿈에 시달리는 밤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이 트인 침실은 성채 가장 안 쪽의 미풍이 부는 곳에 놓여있었다. 그런 밤이면 길갈라드는 엘론드의 발치에 앉아 희미하게 찡그려진 어린 반요정의 이마를 쓸었다. 에아렌딜의 빛이 보이지 않는 밤이면 길갈라드는 엘론드의 꿈 속에 마이드로스와 마글로르가, 그리고 떠난 엘로스가 나타나 그를 신음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워졌다. 길갈라드의 감정은 이제껏 없었던 격렬함으로 요동쳤고 숨이 막힐 것 같은 안타까움으로 손 끝이 떨려왔다.



 “에레이니온.”


 “엘론드?”



 급작스러운 부름에 돌아보자 엘론드는 반만 뜨인 눈으로 길갈라드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길갈라드는 한 참 동안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엘론드의 가슴팍은 나지막하게 오르내렸고, 조용한 숨소리만 남겨졌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더 고요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 없이 엘론드의 발치에 앉아있었다.  




-

모처 리퀘스트. 어린 엘론드가 기여워 죽는 길전하였다고 한다. 는 무슨 왜 마이로드 어려서부터 미망인포스요? 진짜 뻥 안치고 갈수록 글이 후퇴하는 것 같다. 진심. 안농담. ㅜ.ㅜ오랜만에 덕질하는데 잘 쓰고 싶다 베리머치. 무슨 버퍼링 걸린 사람마냥 글 쓰는데 버벅 버법버버거벅 어버버버버하고 있음...ㅠㅠ...길엘은 사랑입니다 두분 발리노르에서 행쇼ㅠㅠ썰이 너무 좋아서 잘 뽑고 싶었는데 통탄스럽다...


'archive > Tolki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엘] 롤리타 2  (3) 2013.06.13
[길엘] 롤리타 1  (4) 2013.02.07
[길엘] 롤리타 일부  (0) 2013.02.03
백업1  (0) 2013.02.03
[스란엘] joker  (2) 2013.01.20
,